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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찰 답사/경기도-명찰

한남정맥을 추억하려 찾은 안성 칠장사

by 굿모닝 박 2022. 11. 28.

답 사 일 자 :  2022년 11월 27일 (일요일)

 

답 사 명 찰 :  칠장사

 

소 재 한 산  : 칠현산, 칠장산

                    

소  재  지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한남정맥을 추억하려 찾은 "안성 칠장사"

 

지난번에 "안성 석남사"를 들리는 길에 생각이 났었던 사찰이 있었는데 바로 "안성 칠장사"입니다

조용하면서 소박하게 기억되지만 결코 규모는, 가람이 작지만은 않게 기억되었었던 "안성 칠장사", 그리고 "한남정맥"의 출발지 이자 "한남금북정맥", "한남정맥", "금북정맥"이, 즉 9정맥중에 무려 3정맥이 교차하는, 저처럼 정맥산행의 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는 큰 의미가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비록 정맥산행이 중단, 포기했지만 언제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발길을 걸쳐보려 하는 저로서는 결코 잊을수없는 "칠장사" 이고 "칠장산"의 등로 입니다

기억을 더듬고, 자료를 찾아보니    2010년 10월 10일에 "한남정맥"에 첫발을 들였으니까 만으로 따져도 12년이 훌쩍 넘었는데 그때는 열정이 너무 앞서서 생각이 나면 앞뒤 안가리고 바로 행동으로 옮겨서 비록 낭패도 많이 보았지만 그래도 결과는 만족스럽게 도출해냈는데 요즈음은, 재작년에 건강을 해쳐서 아산병원에 입,퇴원하고 난 뒤로는 웬지 무엇이던 망서리고 주저하게되는 버릇이 생긴것은,  나도모르게 나이, 건강,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생각이 많아졌다는건  자신감이 부족해졌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조금씩 서서히, 일단 이렇게라도 山의 언저리에서 너무 멀어지지않게 얼쩡대면서 山의 마루금이나, 산그리메를 바라보면서, 그리고 또 산사의 기운을 늘~느끼면서 즉 생활속에서 여가가 생기면 산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않도록 이렇게나마, 오늘처럼 옛 "한남정맥"을 추억하기위해 "칠장사"를 찾은것처럼 기웃거리려 해 봅니다

그리고 "칠장사"에 다녀와서 이것 저것 자료를 검색하다보니 "칠장사"에 어린, 깃들은 설화, 전설들이 재미있게 깃들어 있다는걸 다녀온 나중에야 알았드랬읍니다

나중이라도 다시 한번 이야기를 찾아서 다시한번 더 다녀와야겠읍니다 

Ps : 궁예, 임꺽정, 조선조의 인목대비 등등 

 

 

오랜만에 꺼내보는 한남정맥 개념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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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문의하니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었읍니다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자세한 내용은 다 모셔오지 못했읍니다

관심있으신분은 "위키백과"에 문의해보시기 바랍니다

 

칠장사(七長寺)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764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1983년 9월 19일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경기도 칠현산(七賢山)에 있는 칠장사는 세운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0세기경에도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 현종 5년(1014)에는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넓혀 세웠는데 ‘칠장사’와 ‘칠현산’이라는 이름도 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7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선하게 만들었다는 설화에서 유래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인조 원년(1623)에 인목대비가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의 명복을 비는 절로 삼아서 크게 된 곳이기도 하다. 이후 세도가들이 이곳을 장지(葬地)로 쓰기 위해 불태운 것을 초견대사가 다시 세웠으나 숙종 20년(1694) 세도가들이 또 다시 절을 불태웠다. 숙종30년(1704)에 대법당과 대청루를 고쳐 짓고 영조 원년(1725)에 선지대사가 원통전을 세웠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과 원통전을 비롯한 12동의 건물과 혜소국사탑과 탑비, 철제당간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현지 안내문

7세기 중엽 신라 선덕여왕(532~647) 대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고려 현종 5년(1014년)에는 해소국사가 왕명으로 중창하였고 칠장사와 칠현산이란 이름은 해소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7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현인으로 만들었다는 설화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1]

고려 우왕 9년(1383년)에는 왜구의 침입으로 충주 개천사에 있던 고려의 역조실록을 이곳으로 옮겼을 정도로 당시 교계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였다. 인조 원년(1623년)에는 인목대비가 아들 영창대군과 아버지 김제남을 위한 원찰로 삼아 크게 중수하였다. 현종 15년(1674년), 숙종 30년(1704년), 영조 원조(1725년), 고종 15년(1878년) 등 수차례 중건을 하였으며 1970년대 이후 지속적인 수리를 통해 지금의 가람을 이루고 있다.[1]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과 원통전을 비롯한 15동의 건물과 석탑, 동종 등이 있으며, 국보 제296호 칠장사 오불회괘불탱을 비롯하여 혜소국사비, 철제당간 등 많은 지정 문화재가 있다. 또한 오랜 역사와 함께 칠장사에는 여러 구전이 내려오는데, 궁예가 10세까지 활쏘기를 하며 유년기를 보냈다는 활터가 남아 있으며 의적 임꺽정이 갖바치스님 병해대사에게 바친 꺽정불 이야기, 암행어사 박문수가 과거시험을 보기 전에 나한전에서 기도를 드리고 잠이 들었는데 꿈에 나타난 나한님이 과거시험 구절을 가르쳐주어 장원급제했다는 설화가 내려오고 있다.[1]

전설

고려 시대에 칠장사에 혜소 국사가 머물러 있었는데 인근에 일곱 명의 도적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 도적들이 칠장사 근처에서 쉬다가 한 명이 목이 말라 절 근처 샘물에서 물을 마시려고 하였다. 그런데 물바가지가 금으로 만들어져 있어 그것을 숨겼고 다른 도적들도 모두 그렇게 했다. 그런데 도적들이 집에 오자 바가지가 없어져 있었다. 도적들은 칠장사에 머무르는 혜소 국사의 신통력이라고 생각하고 혜소국사에게 찾아가 모든 것을 자백한 뒤 착한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절 뒷산을 칠현산이라 불렀고, 이 절을 칠장사라 불렀다고 한다.

소장 문화재

국보

보물

경기도 유형문화재

 

참고 자료

  • 칠장사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아쉬운 마음에 "유튜브"에서 아래의 영상을 모셔옵니다

https://youtu.be/qviv2qwudX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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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한남정맥"의 산행을 한번더 시도해보라는 유혹으로 보입니다 

 

그전엔 없었던것 같은데....

아무튼 저도 아이들을 위하여 한자 적어 소원해 보았읍니다~~~ㅎ

 

오늘 같은날에 마루금을 걸어야 하는데....

이러다 보면 언젠가는 걷겠지요?~~~ㅎ

 

오늘은 명찰답사니까 천왕문을 통과 합니다 

 

이곳의 사천왕상도 무섭지는 않읍니다

웬지 친근한 동네 아저씨? 같읍니다~~~ㅎ

 

괜히 종도 한번 울려 보구요

 

그래도 조금 올라봅니다

겨우 "금북정맥"의 접속점까지 다녀왔읍니다

 

이곳이 "금북정맥"의 접속점 입니다

시작점은 "칠장산"정상쪽의 삼거리 이구요

 

12년전엔 이랬었더랬읍니다

 

이런 시설물은 요 근래에 건립되었나봅니다 

 

그리고는 바로 하산하여 다시 "명찰답사" 모드로 돌아섭니다

 

"금강의 발원지"라는데 너무 물이 없어요

 

다시 가람을 둘러 봅니다

 

"혜소국사비"입니다

 

천천히 둘러보며 발길을 옮깁니다

 

대웅전이 고색창연?합니다

이제는 단청을 입힐때가 된것 같읍니다

너무 오래 방치하면 훼손될것같아 걱정이 됩니다

(지혜롭고 학식이 높으신 스님들께서 계시는데 별걱정을 다합니다~~~ㅎ) 

 

경건한 마음으로 살짜기~~~

 

종각은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읍니다

요즘들어 안구의 건강이 안좋은데

저의 눈에 하늘이 시원한 한방울의 하늘을 넣어주는지 청량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일주문도 정비중인가 봅니다

아쉬운 마음에 뒤돌아 보면서 조만간 다시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길을 떠납니다